사건의 발단은 동기 J가 내게 자신의 단톡방의 캡쳐본을 보내며 시작되었다. J로서는 나의 남자친구가 본인에게 연애 관련 조언을 주었다며, 자신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내게 알리기 위해 보낸 캡쳐본이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J의 깨달음이 아닌, 남자친구의 발언에 쏠렸다. 그는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누군가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며 ‘남녀갈라치기가 아님’이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어지는 눈물겨운 조언-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여자의 속마음을 캐치하냐는 J의 물음에, 그는말하기 싫은 것도 있는 법이라고,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혼자 알아내라고 말하였다-은 퍽 가상한 감이 있었으나 그뿐, 나는 확실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 불쾌했는가? 첫째로는 ‘남녀갈라치기 아님’이라는 문장 자체였다. 나는 현 세대의 성별 갈등-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지만,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급한대로 사용한다-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을 경멸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미워하는 것을 그만 두고 화해하라는 식의 가벼운 결론을 싫어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남성들의 인셀화 및 급증하는 여성 혐오 범죄엔 관심이 없었다. 남자가 전여친을 죽이든 길 가는 여자를 패든 각각의 사건을 단편적으로 축소시키고 연관짓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성혐오라는 것은 없으며, 여성이 당한 모든 범죄는 개인의 피해일 뿐 여성 전체를 향한 위협이 아니라는 안일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남녀갈라치기’라는 단어 역시 그런 인간들이 사용하는 단어였다. 여성이 피해를 본다는 내용의 글, 혹은 영상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남녀 갈라치기를 그만 하라는 부류들 말이다. 따라서 내게 그 단어는 속없는 안일함 혹은 여성의 피해를 묵살하려는 겁박으로 읽혔고, 그것을 내 남자친구가 사용했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둘째로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은 단톡방에서 열심히 연애 조언을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 자체였다. 그 단톡방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 과 동기로서, 우리가 과CC임을 알았다. 따라서, 그의 조언을 본 이들은 어렵지 않게 우리의 연애의 단편을 엿볼 수 있을 터였다. 여자는 원래 삐지는 이유를 말하지 않으므로 알아서 원인을 파악하라는 식의 메시지에서 내가 연애할 때 어떤 식으로 구는지 멋대로 짐작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의 구구절절 이어지는 연애 조언 속에서 ‘내가 이렇게 잡혀 살아’하고 우는 소리를 하는 늙은 남자들의 허세와 비슷한 류의 ‘즐거운 자기연민’이 읽혔다. 기분 나쁜 것이.
마지막으로, ‘(연애 중인)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아라’는 말이 내 신경을 제대로 긁었다. (이때 논리적이라 함은, 자신의 감정이 상할 경우 그 감정을 낱낱이 분석하여 알려주고 피드백 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문장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연애 중인 여자는 대부분 말없이 토라지기 일쑤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 역시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와 주변을 볼 때면, 보편적인 정서를 볼 때면 일단은 맞았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연애의 특수성에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나는 논리적이었다. 감정기복은 심했지만 남에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내 감정 및 행동의 이유를 낱낱이 해체하여 분석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연애를 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연인이라는 것은 특별한 위치를 선점하여, 내가 그에게 마음껏 투정을 부리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연인이, 여자와 남자 할 것 없이 (여자 쪽이 더 심한 것 같긴 하지만) 조르고 장난 치고 삐지며 관계를 견고히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모습에서 경멸을 느끼는 쪽이었다. 그것은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이어져서, 나는 연애 초반엔 남자친구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완벽히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해달라’는 그의 요청에 서서히 변하여 마음을 열고 논리를 내려놓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종종 남자친구에게 투정을 부리고, 그걸 받아주는 그를 보며 ‘이게 아닌데’하는 묘한 자기 경멸을 느꼈으나 일단은 이 관계에 안주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저 발언-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발언이 내게 굴욕을 일깨워줬다. 나는 연애하는 여자는 논리적이지 않다는 릴스에 ‘@자기 이거봐 ㅋㅋ 나다’하고 남자친구와 킥킥대는 여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따라서 나는 다시 이성적인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연애를 관둬야 했다. 이성적인 연애는 상대의 불만과 울음을 동반하였으므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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