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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쫓기며며

    새벽 3시 17분,

    나는

    얼마나 좋은 글을 쓰려고 지금껏 깨어 있는가?

    어제 오후 4시부터 지금까지 해서 적은 거라곤 한 페이지 남짓의 글이다. 선뜻 손을 떼지 못한 채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 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비판적 에세이라는 것은 수필처럼 마음 가는 대로 감정을, 문장을 표현할 수가 없다. 얕은 식견과 빈약한 배경지식을 드러내며 나는 괴로워한다. 글을 쓰기가 이처럼 괴로운 적이 있었나? 이런 글 앞에서 나는 항상 턱 막힌다. 생각을,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하여. 그래서 막힌다.

    별 상관도 없는 교양 수업 에세이에 이토록 머리를 싸매다 보면, 한쪽에선 핸드폰이 울린다. 관심 있던 랩 교수님과 인터뷰를 했다든지 논문 스터디를 한다든지 생산적으로 사는 주변 사람들의 연락이다. 그럴 때면 뒤에서 누가 목줄을 당기는 마냥 숨이 막혀 나도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에 휩싸인다. 이렇게 뻘글을 쓸 때가 아니라고, 전공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매우 짧게 이어지는데, 근 2년 간 나는 전공에서 강렬한 적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일깨우며 초조함에서 좀 깨어날라치면, 텅 빈 공허 속에서 ‘그럼 뭘 할 건데?’하는 물음이 울린다. 그러게. 난뭘하려는거지?

  • 연애하는여자는논리적이지않다

    사건의 발단은 동기 J가 내게 자신의 단톡방의 캡쳐본을 보내며 시작되었다. J로서는 나의 남자친구가 본인에게 연애 관련 조언을 주었다며, 자신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내게 알리기 위해 보낸 캡쳐본이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J의 깨달음이 아닌, 남자친구의 발언에 쏠렸다. 그는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누군가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며 ‘남녀갈라치기가 아님’이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어지는 눈물겨운 조언-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여자의 속마음을 캐치하냐는 J의 물음에, 그는말하기 싫은 것도 있는 법이라고,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혼자 알아내라고 말하였다-은 퍽 가상한 감이 있었으나 그뿐, 나는 확실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 불쾌했는가? 첫째로는 ‘남녀갈라치기 아님’이라는 문장 자체였다. 나는 현 세대의 성별 갈등-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지만,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급한대로 사용한다-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을 경멸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미워하는 것을 그만 두고 화해하라는 식의 가벼운 결론을 싫어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남성들의 인셀화 및 급증하는 여성 혐오 범죄엔 관심이 없었다. 남자가 전여친을 죽이든 길 가는 여자를 패든 각각의 사건을 단편적으로 축소시키고 연관짓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성혐오라는 것은 없으며, 여성이 당한 모든 범죄는 개인의 피해일 뿐 여성 전체를 향한 위협이 아니라는 안일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남녀갈라치기’라는 단어 역시 그런 인간들이 사용하는 단어였다. 여성이 피해를 본다는 내용의 글, 혹은 영상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남녀 갈라치기를 그만 하라는 부류들 말이다. 따라서 내게 그 단어는 속없는 안일함 혹은 여성의 피해를 묵살하려는 겁박으로 읽혔고, 그것을 내 남자친구가 사용했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둘째로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은 단톡방에서 열심히 연애 조언을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 자체였다. 그 단톡방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 과 동기로서, 우리가 과CC임을 알았다. 따라서, 그의 조언을 본 이들은 어렵지 않게 우리의 연애의 단편을 엿볼 수 있을 터였다. 여자는 원래 삐지는 이유를 말하지 않으므로 알아서 원인을 파악하라는 식의 메시지에서 내가 연애할 때 어떤 식으로 구는지 멋대로 짐작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의 구구절절 이어지는 연애 조언 속에서 ‘내가 이렇게 잡혀 살아’하고 우는 소리를 하는 늙은 남자들의 허세와 비슷한 류의 ‘즐거운 자기연민’이 읽혔다. 기분 나쁜 것이.

    마지막으로, ‘(연애 중인)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아라’는 말이 내 신경을 제대로 긁었다. (이때 논리적이라 함은, 자신의 감정이 상할 경우 그 감정을 낱낱이 분석하여 알려주고 피드백 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문장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연애 중인 여자는 대부분 말없이 토라지기 일쑤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 역시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와 주변을 볼 때면, 보편적인 정서를 볼 때면 일단은 맞았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연애의 특수성에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나는 논리적이었다. 감정기복은 심했지만 남에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내 감정 및 행동의 이유를 낱낱이 해체하여 분석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연애를 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연인이라는 것은 특별한 위치를 선점하여, 내가 그에게 마음껏 투정을 부리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연인이, 여자와 남자 할 것 없이 (여자 쪽이 더 심한 것 같긴 하지만) 조르고 장난 치고 삐지며 관계를 견고히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모습에서 경멸을 느끼는 쪽이었다. 그것은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이어져서, 나는 연애 초반엔 남자친구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완벽히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해달라’는 그의 요청에 서서히 변하여 마음을 열고 논리를 내려놓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종종 남자친구에게 투정을 부리고, 그걸 받아주는 그를 보며 ‘이게 아닌데’하는 묘한 자기 경멸을 느꼈으나 일단은 이 관계에 안주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저 발언- 여자를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발언이 내게 굴욕을 일깨워줬다. 나는 연애하는 여자는 논리적이지 않다는 릴스에 ‘@자기 이거봐 ㅋㅋ 나다’하고 남자친구와 킥킥대는 여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따라서 나는 다시 이성적인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연애를 관둬야 했다. 이성적인 연애는 상대의 불만과 울음을 동반하였으므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마구잡이글

    글 앞에서 머뭇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한번 쉼없이 타자를 치려 한다. 멈추면 안 되는 게임. 고민따윈 하지 않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 모조리 토해내는 글을 써볼까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정말로 생각을 하는 것. 그렇지 않고서 손을 놀리다간 언제나 써재끼는 그 관성적인 글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므로. 먼저 내가 쓸 것은 어제부터 쓰고 싶어서 길을 걸으며 문장들을 떠올리다가, 막상 집에 와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여, 멋진 시작을 위해 떠오르는 다른 주제로 시작해 붙여 쓰려다,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이도 저도 아닌 글(직전에 이곳에 올린 것)을 발행하게 되어 밀려났던 주제이다. 아니, 주제조차 되지 못한 짤막한 감상. 나는 나의 판단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나를 싫어한다 여겼던 친구는 나를 좋아하며, 이미 틀어졌다 생각한 사이는 아주 좋았다.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전기전자공학부 공부는 난해하고 흥미를 돋구지 않으며, 오히려 맞지 않는다 생각한 컴퓨터공학부의 공부가 내겐 더 맞았다. 그로써 내가 학과 공부가 싫다며 징징댄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아 하는 반항’이 아니라 그저 무엇이든, ‘공부’가 하기 싫어 하였던 반항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또 무엇을 써야 하나? 해야 할 공부가 슬슬 쌓여가고, 지금 하지 않는다면 눈 깜짝할 새에 목끝까지 차올라 숨을 막을 것을 안다는 것? 그러나 나는 오늘 내내 침대에 누워 그 작은 폴더폰 화면으로 그리 즐겁지도 않은 웹툰을 정주행하였다는 것? 지금 있는 이 카페가 꽤 추워 손이 곱아들고 있다는 점? 그래서 오타가 종종 발생하여 뒤로 가기를 많이 누른다는 것? 무엇을 더 말해야 할까. 내일이 과 단체 행사라는 것? 기대도 되고 묘하다는 것? 컴공을 버린 이후로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것? 내가 너무 좁게 봤다는 것? 성공도 인맥도 도움도 오직 이 작은 과 안에서, 그것도 우리 학번 안에서만 일어나는 양 전전긍긍했다는 것? 전전긍긍한 것 치고는 달리 과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남초과에서 여자로 적응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러나 어쩌면 내가 놓친, 예쁜 여자라서 얻었던 이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그보다는 디메릿이 많음을 안다) 또 무엇을 쓸까. 나를 무한으로 믿는 부모님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나는 나의 부모님만큼 좋은 부모가 적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겸양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작은 규모라, 오히려 어머니의 벌이가 더 높다고 알고 있다), 항상 어머니보다 일찍 퇴근하여 저녁을 차리고, 어머니는 학원 일이 끝나고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신다. 두 분은 나를 사랑으로 키우셨으며(사실상 과보호에 치달을 정도의 사랑과 애정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무소불위의 애정 및 권력을 느끼며 자랐다. 본인 기분이 안 좋다고 화풀이를 하는 부모라든지, 자식에게 잘못을 하는 부모 따위는 내게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나의 부모님은 내 긴 수험생활 내내 군말 없이, 아니, 오히려 한 발 앞서서 더 해도 된다고, 그래도 안 되면 망해도 된다며 나를 북돋아 주셨다. 본가에 내려갈 때면 아버지는 내게 밥을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고, 어머니는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존경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버지. (물론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퍽 존경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이며 훗날 가정을 꾸린다면 남성의 가정 종속을 바라는 나로서는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자라며 본 것이 유들유들한 아버지와 지적인 어머니인 만큼 이것을 기본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가족 얘기를 쓰는 것은 오랜만이라 길어졌다. 하여튼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우리 가족의 모습에 만족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좋은 가정이 좋은 아이를 만든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얼마든 엇나가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니까. 과거의 나 역시 그 예시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온통 허영과 자만 그리고 폭력성에 빠져 지내던 시기. 그러나 여기서 의문. 그렇다면 그 시기가 잘못됐나. 그때 나의 분노, 세상을 향한, 남자를 향한 분노가 잘못되었나. 그때 나의 꿈, 포부가 잘못되었나. 그때 나의 태도,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우직하게 나가던 태도가 잘못되었나. 어쩌면 지금의 난 그때의 내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사회에 종속될수록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잃었다. 저번 몇 주는 내가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살았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상대의 죽음조차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건 충격에 의한 슬픔 상실과는 다르다)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어쩌면 나는 애정하는 이의 고통을 안타까워 하지 않으니, 상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분명 눈앞의 대상을 아끼고 좋아한다. 함께 있고 싶은 친구가 많고 즐거운 추억이 여럿이다. 그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들의 죽음에 타격받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애정한다. 그러면 됐다. 굳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나중엔 동정을 느낄 수도 있고 말이다. 난 갈수록 물러지고 있으므로. 또 무엇을 쓰지? 쓸 말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쓰고 싶었던 게 적었나. 아, 한번쯤은 장편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내 미래는 뭘까. 정말 내년에 의대를 가려나(최대한 기피하는 미래이긴 하다만) 아니면, 무엇을? 코딩에 정을 붙일까. 아니면, 무엇을? 갑자기 작가가 된다고 나서려나. (하지만 내 정도의 재능은 재능이 맞긴 한가) 아니면, 무엇을? 무엇을? 해야 하나. 해야 하나?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아이패드 속 게임 및 트위터만 하다간 한심하게 늙어죽을 게 뻔하니 더 읽고 더 읽어야 하나. 읽고 읽고 읽고. 그래, 그거라도 해봐야지. 더. 더. 더 읽어야지. 그러니까 내가 만족할 만큼 읽어봐야지. 오늘, 지금부터. 여기서 글을 마치고 책을 펴겠다.

  • 끝맺지않은글

    죽어라 되뇌이는 것의 반대편에 그 사람이 있다. 그것이 내가 확신하는 유일한 명제였다. 사람은 본인이 하기 쉬운 것은 굳이 결심하지 않으며, 천성에 맞는 것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어려운 것, 닿을 수 없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여 갈망한다.

    따라서 한 인간이 죽을 힘을 다해 결심하는 것은 그의 결핍을 보여준다. 그에겐 그것을 쉽게 이룰 힘이 없다는 증명이므로.

    나의 일기는 우습다. 치기 어린 시절의 포부는 (뒤늦게) 머리가 자람에 따라 흔들렸고, 나는 눈앞에 아른대는 불안을 애써 외면한 채 나에게 겁을 줬다. 이뤄야 한다고. 이루지 못하면 죽으라고. 불안해 질수록, 더 거칠게, 이루지 못하면 죽으라고 그렇게 써내려갔다.

    그쯤에서 나의 좌우명이 탄생했다. 萬折必東.

    죽어라 되뇌이며……. 만절필동, 하고. 꺾이고 꺾여도 원래 향했던 곳으로 향하자고 그렇게……. 불안에 떨며.

    삶의 오랜 시간 나는 내 삶을 변명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여 보냈다. 이 꺾임에도 의미가 있어야 했고 저 꺾임에도 의도가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곳으로,

    반드시.

  • 내가낳을자식에대한긴이야기가될것이다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그것은 딸이어야 했다. 그리고 내게 딸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닮아야 했다. 웃을 때 올라가는 나의 입꼬리를, 나의 눈을, 나의 사고회로를 닮아야 했다. 심지어는 불안할 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마저 닮아야 했다. 그 애는 나와 똑같아야 했다.

    내게 있어서 자식이란 것은 두 번째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두 번째 나, 새로운 버전의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원이었으니.

    수많은 부모가 하는 실수가 있다.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채찍질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 행동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변명해봤자 나 역시 전형적인 통제형 부모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에.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이미 자식을 낳아 키웠고, 나는 아직 자식은 고사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이십대라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자식과 결혼은 한 세트인가?) 그러므로 나는 얼마든 미래 자식을 위한 양육관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뀌려나?

    십 대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징그러워했고, 해코지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신생아든 걸음마를 뗀 아기든 할 수만 있다면 짓이기고 싶다고 어머니께 무심코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날 나의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내게 나를 닮은 자식 하나만 낳아달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자식을 낳으면 안 되는 사고관을 가졌다고 하시면서도 이러시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손주를 보고 싶은 가벼운 마음?) 또한 아픈 게 싫었다. 나는 내 몸이 너무 소중해서 몸에 해가 될 짓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더라도, 아픈 게 싫어서 선뜻 낳겠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 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진실로 ‘갖고 싶었다’. 나와 똑같은 여자애를 만들어서, 나의 성장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모두 제거한 채 완벽한 환경에서 양육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 애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얼만큼 도약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선 나의 성장 배경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2002년 여름에 태어났다. 외가 친가를 통틀어 첫 아이였다. 좀처럼 웃는 법이 없어서 다들 걱정했다고 한다. 걸음마는 느렸고, 말은 빨랐다. 기억나지 않는 시절의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어머니께 들은 고백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 동생이 태어날 무렵(2004년)부터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하셨다. 내가 젖을 떼게 하기 위해 어머니의 젖꼭지에 식초를 바르기도 했다고 하셨다. 그 때문인지 나는 시큼한 것을 아예 입에 대질 못한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고서 일 년 정도 어머니께선 산후우울증을 앓으셨는데, 그때 내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셨다고 하신다. 그때부터 내가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고.

    그걸 듣고서야 지금껏 품어온 의문이 풀렸다.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자타공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내가 왜 불안에 떠는 인간으로 성장했는지 말이다. 그런 인간이 되려면 어릴 때의 트라우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편협한 나의 사고였다. 그러나 그 편협함이 적어도 내게는 들어맞은 것이다. 기억도 못 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동생을 신경 쓰느라 나를 홀대한 것이 무의식에 남아 나를 이다지도 한심한 어른으로 크게 만들었다.

    억울한가? 어쩌면 조금은. 하지만 이제와 이십 년도 전의 일에 집착하며 자기 연민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내 불안한 정신건강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일러둔 채 넘어가겠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아마 대여섯 살로 추정된다. 그때부터 유년기~청소년기 내내, 나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과보호를 받았단 얘기다. 앉아만 있으면 모든 걸 부모님이 해결했다. 나는 그저 더 짜증내는 법, 화를 내는 법만 익히면 됐다.

    똑똑하단 칭찬이야 항상 들은 것이지만, 초등학교에 올라가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부모님이 나를 끌고 정신과를 간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상한 행동을 했나? 사회성이 너무 떨어졌나? 어쨌건 그곳에서 지능 검사 같은 걸 왕창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진료 결과 나는 좌우뇌 불균형을 판정 받았는데, 이는 높은 지능과 낮은 주의력의 갭을 의미했다. 그 갭을 매우기 위해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 시간을 빼고 병원을 다녔다. 어린 내겐 ‘매우 높은 지능’이 값진 훈장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낮은 주의력 따윈 가볍게 무시했다. 재능에 매몰되어 끈기와 같은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특징이었으므로.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믿었고, 최고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또래와 어울리며 그러한 믿음이 박살나고 어른이 된다. 그러나 나는,

    첫째. 또래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둘째. 또래와 어울릴 때조차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일단 중학교 시절은 첫 번째 이유가 강했다. 그때의 내겐 사회성이란 것이 없었다. 남들 다 하는 페이스북도 하지 않았고, 연예인도 몰랐으며, 그 외의 공감대에도 공감을 하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만이 진정으로 기뻤다.

    고등학교 시절은 두 번째 이유였다. 그때부터는 최소한의 눈치를 장착하여서, 친구들이 슬퍼할 때면 함께 슬퍼하는 시늉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친구에게 일정 선 이상의 애정을 쏟는 법을 알지 못한다. 친구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그들에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사랑으로부터의비이성

    죽음 이후의 세상을 믿지 않는다. 영혼이니 윤회니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앵무새가 죽자 가는 길 외롭지 말라며 좋아하던 밀렛을 함께 묻어줬다는 글을 읽고 동요했다. 왜 나는 나의 앵무새가 죽었을 때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그 애가 죽어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을지 걱정하는가. 왜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하며 고통을 느끼는가. 왜 나는 코웃음치는 이성을 무시한 채 감정과 허구에 절여져 슬퍼하는가. 아니다. 이성조차 함락당한다.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 사후 세계를 상정하고, 여전히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저 슬퍼하는 것. 네가 살아 숨쉬던 순간에도 나는 종종 밤이면 네게 못해준 것이 미안해 울었다. 이 좁은 집 안에서 평생을 보낼 네가 불쌍했고, 야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네가 불쌍했다. 동물이라는 것은 애완이 아닌데 애완이 된 네가 불쌍했다. (반려라는 것은 허상이다) 너는 나를 몰랐어야 했다. 나는 평생 너를 만나지 못하거나, 한 번 하늘을 가로지르는 네 날개 끝을 보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 너는 자연에서 살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나는 네게 미안했다.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할 수 없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되뇌이는 주제에 네 옆에선 그게 불가능했다. 사랑은비이성, 내가 내린 모든 결론과 냉소를 함락하고 말아서 결국 나는.

  • 유리된성이필요해

    사람은 싫고 상황은 역겹고 사랑하는 몇 안 되는 것들은 나를 숨막히게 짓누르는데

    유리된 성

    유리된 성이 필요해

  • 왜존재하는가

    존재에 이유는 없다.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인간은 미치게 될 뿐이다. 생명엔 그 어떤 숭고한 가치도 없으며,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엔 일말의 신성도 목적도 없으니, 그저 살것. 왜 존재하는지 궁금해하지 말것. 그것이 나의 자명한 결론이었다.

    왜 그럼에도 나는 매일 밤 나의 존재를 의식하는가.

    매일 밤, 나의 작은 방이 고요에 휩싸이고 전등의 불이 한켠을 환히 비출 때, 나는 고립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기꺼운 우울에 휩싸여 나의 존재와 그 이유와 세상을 생각한다.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 끈질기게 운동한다. 정지 상태는 싫다. 운동을 하는 순간- 고민하는 순간, 그때에만 맛볼 수 있는 묘한 성취감을 향하여……. 이때 중요한 점은 하나.

    과하게 생각에 빠져들지 말것.

    얕은 생각은 묘한 성취감을 동반하지만, 치열한 존재 고민은 곧 피할 수 없는 공허에 도달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시늉만 한다. 그러나 시늉이 쌓이면 그것 역시 고통이다. 제대로 된 생각은 하지 못하냐는 스스로의 질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엔 목줄 잡힌 개처럼 생각을, 공허를 향해 끌려간다.

    따라서 텅 빈 속을 견디지 못하고 끈질기게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강렬한 우울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속의 공허를 채우겠답시고 더 큰 무無로 향하고 있으니.

    삶과 존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인간이 제 영혼에 멋대로 갖다 붙인 사명은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으나 존재의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의 이유를 존재 이유로 확장시켜 멋대로 충만해진다. 그러한 착각은 인생을 흐리고 편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나는 착각을 하고 싶다. 삶의 이유를 찾고, 삶의 이유를 곧 존재의 이유로 믿은 채로, 끝나지 않을 열정의 불꽃에 휩싸여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내 삶에 방향이 생기도록. 벡터가 되어 유의미한 무언갈 할 수 있도록.

    겨냥할 수 있도록.

  • 사랑

    소설을 읽는데 누군가 생각난다면 그것이 사랑인가. 주인공이 사랑하는 이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묘사가 내가 아는 사람을 연상시킨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야망 가득한 면이라든지 큰 키라든지 유순한 성격이라든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단편적인 특징이 아니라, 사랑으로만이 쓸 수 있는 서정적인 대목에서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그 사람으로 읽힌다면.

    사랑인가. 그러니까, 여전히?

    그 사람이 걷고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 사람이 매혹하고 내치고 이용한다. 나는 조금은 역겨워하고 조금은 매력을 느끼며 읽고 또 읽는다. 멋대로 소설 속 인물의 심리에 그 사람의 심리를 투영한다. 너도 그랬어? 그때 너도 이런 생각이었던 건가. 소설의 인물과 그 사람을 좋을 대로 각색하고 뒤집어 붙여서 그럴듯한 인간상을 하나 만든다. 내가 이끌리는, 동시에 경멸하는 하나의 인간상을.

    문득 이따위 독서는 좋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고 머릿속에서 그 사람을 지워냈다. 인물은 다시 백지가 되고, 나는 문장을 읽어나가며 독립적인 인물을 구축한다. 지우려고 마음 먹으면 또 쉽게 지워지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역시 이것은 사랑이 되기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끌렸을 뿐이다. 속이 어떻든 아름다워서.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껍데기에 이끌리는 것으론 부족하다면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 사람만큼 내 마음에 쏙 드는 외모가 없었는데 나는 그는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사랑했다. 무엇이 기준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은 동성이었다. 내가 양성애자라는 가능성 따윈 모른 채 살아가던 이십대 초의 일이었다. 처음엔 동경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동경은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설명하기엔 당위성이 부족했다. 그건 첫사랑이었다.

    나는 하루 내내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별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가, 그게 너무 좋아서 펜으로 몇 번을 따라 썼다. 마음이 부풀었다. 그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을 때면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사랑의 증거가 넘쳐 흐름에도 불구하고 동경인가 사랑인가 지난한 고민을 이어오던 시절. 사랑한다면 키스할 수 있다는 말에 키스와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해보다가 죄스러워 관두던 시절. 힘들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던 시절.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친한 걸 볼 때마다, 내게 보이지 않는 말투로 대화하는 걸 들을 때마다, 신경이 쓰여 미칠 것 같던 시절.

    사랑이라면 그것이 사랑이었다. 너무 사랑이라서 그 사람이 동성이라는 제약 따윈 훌쩍 뛰어넘고, 자연스럽게 내 성적 지향을 인정하게 되던 그것이야말로 사랑이었다.

  • 완성되지않은글,언제나와같이

    매미가 운다. 아침 일찍 피시방에 가 수강신청을 마치고 다시 잠에 들었다가 깨니 오후 2시였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꿈에서 나는 곤란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그 여파는 꿈 밖에까지 미쳐 나는 깨어나고서도 한동안 뭔가 잊은 건 없는지 초조하게 머릿속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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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을 짧게 써야 한다. 군더더기 미사여구는 빼야 한다. 그걸 알지만 나의 글은 항상 호흡이 길고 묘사 범벅이다. 문장을 짧게 쳐내는 소설 특유의 거친 여운이 좋은데 내 글에선 그것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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