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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처음의의도와항상다르게흘러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가 하는 거라곤 이 무형의 무게의 기원을 좇는 것뿐이다. 이것이 청춘이라면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가피한 성장통이라도 원하지 않는다. 판에 박힌 괴로움을 느끼며 나는, 여기에 특별성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절망한다. 괴로워 봤자 모두가 겪은 만큼일 뿐이다. 나의 고통엔 어떠한 차별점도 없다. 그렇다면 다들 이 괴로움을 느끼며, 숨막히는 방황을 하며 그저 견뎌냈다는 건가? 그렇게 어른이 됐다는 건가?

괴로움의 끝에서 나 역시 그러한 어른으로 성장하겠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잘못이다. 나는 내 괴로움에, 나의 방황에 대단한 이름표를 붙이고 싶다. 이것이 보편적인 성장통이 아닌 다른 무엇이길 바란다. 그러나 아니겠지. 이건 생애 주기별로 겪는 시기 중 하나일 뿐이며 나는 곧 이 시기를 지나 어른 아무개가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다. 유예의 끝이 가까워진다.

극단을 추구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이 습성이 내 가장 큰 저주다. 나는 삐뚤게 달린다. 왼쪽으로 달렸다가 오른쪽으로 질주한다. 방향을 바꿔 가며 새로움을 찾아서, 극한을 찾아서 질주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면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여전히 앞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지그재그로 뛴들 결국엔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앞이란 정상성이다. 일반적인 삶이다. 나는 제대로 반항할 용기도 용의도 없다. 그 용의를 만들 어떠한 탐색도 하지 않았기에 욕망 자체가 거세당했다. 하는 거라곤 고작 좁은 방 한켠에 누워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것뿐이다. 그러한 주지를 통해 내가 깨어 있다는 감각, 그것만 얻은 채, 거기서 만족한 채, 실천은 미룬다.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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