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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글

글 앞에서 머뭇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한번 쉼없이 타자를 치려 한다. 멈추면 안 되는 게임. 고민따윈 하지 않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 모조리 토해내는 글을 써볼까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정말로 생각을 하는 것. 그렇지 않고서 손을 놀리다간 언제나 써재끼는 그 관성적인 글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므로. 먼저 내가 쓸 것은 어제부터 쓰고 싶어서 길을 걸으며 문장들을 떠올리다가, 막상 집에 와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여, 멋진 시작을 위해 떠오르는 다른 주제로 시작해 붙여 쓰려다,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이도 저도 아닌 글(직전에 이곳에 올린 것)을 발행하게 되어 밀려났던 주제이다. 아니, 주제조차 되지 못한 짤막한 감상. 나는 나의 판단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나를 싫어한다 여겼던 친구는 나를 좋아하며, 이미 틀어졌다 생각한 사이는 아주 좋았다.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전기전자공학부 공부는 난해하고 흥미를 돋구지 않으며, 오히려 맞지 않는다 생각한 컴퓨터공학부의 공부가 내겐 더 맞았다. 그로써 내가 학과 공부가 싫다며 징징댄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아 하는 반항’이 아니라 그저 무엇이든, ‘공부’가 하기 싫어 하였던 반항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또 무엇을 써야 하나? 해야 할 공부가 슬슬 쌓여가고, 지금 하지 않는다면 눈 깜짝할 새에 목끝까지 차올라 숨을 막을 것을 안다는 것? 그러나 나는 오늘 내내 침대에 누워 그 작은 폴더폰 화면으로 그리 즐겁지도 않은 웹툰을 정주행하였다는 것? 지금 있는 이 카페가 꽤 추워 손이 곱아들고 있다는 점? 그래서 오타가 종종 발생하여 뒤로 가기를 많이 누른다는 것? 무엇을 더 말해야 할까. 내일이 과 단체 행사라는 것? 기대도 되고 묘하다는 것? 컴공을 버린 이후로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것? 내가 너무 좁게 봤다는 것? 성공도 인맥도 도움도 오직 이 작은 과 안에서, 그것도 우리 학번 안에서만 일어나는 양 전전긍긍했다는 것? 전전긍긍한 것 치고는 달리 과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남초과에서 여자로 적응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러나 어쩌면 내가 놓친, 예쁜 여자라서 얻었던 이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물론 그보다는 디메릿이 많음을 안다) 또 무엇을 쓸까. 나를 무한으로 믿는 부모님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나는 나의 부모님만큼 좋은 부모가 적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겸양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작은 규모라, 오히려 어머니의 벌이가 더 높다고 알고 있다), 항상 어머니보다 일찍 퇴근하여 저녁을 차리고, 어머니는 학원 일이 끝나고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신다. 두 분은 나를 사랑으로 키우셨으며(사실상 과보호에 치달을 정도의 사랑과 애정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무소불위의 애정 및 권력을 느끼며 자랐다. 본인 기분이 안 좋다고 화풀이를 하는 부모라든지, 자식에게 잘못을 하는 부모 따위는 내게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나의 부모님은 내 긴 수험생활 내내 군말 없이, 아니, 오히려 한 발 앞서서 더 해도 된다고, 그래도 안 되면 망해도 된다며 나를 북돋아 주셨다. 본가에 내려갈 때면 아버지는 내게 밥을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고, 어머니는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존경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버지. (물론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퍽 존경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이며 훗날 가정을 꾸린다면 남성의 가정 종속을 바라는 나로서는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자라며 본 것이 유들유들한 아버지와 지적인 어머니인 만큼 이것을 기본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가족 얘기를 쓰는 것은 오랜만이라 길어졌다. 하여튼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우리 가족의 모습에 만족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좋은 가정이 좋은 아이를 만든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얼마든 엇나가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니까. 과거의 나 역시 그 예시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온통 허영과 자만 그리고 폭력성에 빠져 지내던 시기. 그러나 여기서 의문. 그렇다면 그 시기가 잘못됐나. 그때 나의 분노, 세상을 향한, 남자를 향한 분노가 잘못되었나. 그때 나의 꿈, 포부가 잘못되었나. 그때 나의 태도,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우직하게 나가던 태도가 잘못되었나. 어쩌면 지금의 난 그때의 내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사회에 종속될수록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잃었다. 저번 몇 주는 내가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살았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상대의 죽음조차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건 충격에 의한 슬픔 상실과는 다르다)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어쩌면 나는 애정하는 이의 고통을 안타까워 하지 않으니, 상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분명 눈앞의 대상을 아끼고 좋아한다. 함께 있고 싶은 친구가 많고 즐거운 추억이 여럿이다. 그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들의 죽음에 타격받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애정한다. 그러면 됐다. 굳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나중엔 동정을 느낄 수도 있고 말이다. 난 갈수록 물러지고 있으므로. 또 무엇을 쓰지? 쓸 말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쓰고 싶었던 게 적었나. 아, 한번쯤은 장편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내 미래는 뭘까. 정말 내년에 의대를 가려나(최대한 기피하는 미래이긴 하다만) 아니면, 무엇을? 코딩에 정을 붙일까. 아니면, 무엇을? 갑자기 작가가 된다고 나서려나. (하지만 내 정도의 재능은 재능이 맞긴 한가) 아니면, 무엇을? 무엇을? 해야 하나. 해야 하나?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아이패드 속 게임 및 트위터만 하다간 한심하게 늙어죽을 게 뻔하니 더 읽고 더 읽어야 하나. 읽고 읽고 읽고. 그래, 그거라도 해봐야지. 더. 더. 더 읽어야지. 그러니까 내가 만족할 만큼 읽어봐야지. 오늘, 지금부터. 여기서 글을 마치고 책을 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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