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세상을 믿지 않는다. 영혼이니 윤회니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앵무새가 죽자 가는 길 외롭지 말라며 좋아하던 밀렛을 함께 묻어줬다는 글을 읽고 동요했다. 왜 나는 나의 앵무새가 죽었을 때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그 애가 죽어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을지 걱정하는가. 왜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하며 고통을 느끼는가. 왜 나는 코웃음치는 이성을 무시한 채 감정과 허구에 절여져 슬퍼하는가. 아니다. 이성조차 함락당한다.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 사후 세계를 상정하고, 여전히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저 슬퍼하는 것. 네가 살아 숨쉬던 순간에도 나는 종종 밤이면 네게 못해준 것이 미안해 울었다. 이 좁은 집 안에서 평생을 보낼 네가 불쌍했고, 야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네가 불쌍했다. 동물이라는 것은 애완이 아닌데 애완이 된 네가 불쌍했다. (반려라는 것은 허상이다) 너는 나를 몰랐어야 했다. 나는 평생 너를 만나지 못하거나, 한 번 하늘을 가로지르는 네 날개 끝을 보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 너는 자연에서 살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나는 네게 미안했다.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할 수 없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되뇌이는 주제에 네 옆에선 그게 불가능했다. 사랑은비이성, 내가 내린 모든 결론과 냉소를 함락하고 말아서 결국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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