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나약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종종 내가 태어날 때부터 글러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예민하고, 언제나 불안에 떨며, 작은 일에도 파르르 흔들린다. 그런 스스로를 용납할 수가 없어서 시작된 자기혐오는 끝을 모른다. 너그러운 인간이 되고 싶었고 담대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당장의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냈으며 약간의 긴장 상황도 버티질 못했다.
특히나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불안이었다. 만성적인 불안. 그것이 나를 좀먹었다. 불안에 떠느라 많은 기회를 놓쳤고 시간을 흘러보냈다. 그렇게 모든 걸 빼앗기며 깨달은 사실은 하나, 나는 몇 안 되는 불안하지 않은 순간조차 불안해야 할 이유를 찾으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은 내게 일종의 디폴트 값이 되어버려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일이 사라져도, 또다른 불안한 상황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단 뜻이다.
나는 불안해하느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불안해졌다. 그 불안이 끝에 달하면, 그래서 경미한 공황마저 올 때면, 갑자기 초연해져서는 붙들고 있던 모든 걸 탁 놔버렸다. 마쳤어야 할 일을 아예 놔버리고, 잡아도 됐을 열정을 잘라버렸다. 그렇게 포기를 택하면 잠깐 동안 밀려드는 안도감이 있는데, 거기에 빠져들어 “다음은 다를 것”이라 공수표를 남발했다.
불안에 떨며 일어나고 불안에 떨며 잠에 드는 것. 누군가 나를 싫어하진 않을지, 이번 일이 나의 능력 부족을 드러내진 않을지, 이렇게 한심하게 살아도 될지……. 불안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나는 수십 개의 불안을 안은 채 그걸 처리할 법을 몰라 쩔쩔 맸다. 살아 숨쉬는 내내, 쭉.
이 불안을 태생적인 것으로 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내겐 이 성격적 결함의 원인으로 손가락질 할 만한 트라우마나 계기가 없으며, 둘째로 나의 어머니 역시 꽤나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내게 본인의 불안함을 쏟아냈다는 얘기는 아니다-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은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가 언뜻 얘기하는 본인의 과거 시절을 들을 때면 나와 유사한 점이 많아 섬뜩하곤 하다. 특히나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모조리 끊은 것을 후회하는데,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언젠간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면 우울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타고난 결함을 극복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무던해진다기에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으나, 언제고 나는 똑같았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날을 세웠고 불안에 매몰됐다.
태생을 고칠 수 있는가? 대체 어떻게 해야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가. 바라던 무던함, 갈망하는 의지력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저 인정하고 체념해야 하는가. 평생을 이런 정신머리로 살아야 함을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답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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