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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볼때마다

KBS 뉴스, 최민영 기자

닭장에 든 닭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도로에 놓여 있는 하얀 살코기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생을 좁은 닭장 안에 갇혀 살아 도망치는 법을 모르는 닭들은 그저 멀뚱히 앉아 있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쏟아진 닭”

쏟아졌다고 한다. 쏟아졌으니 누군가가 와서 수거해갔을 테다. 그래, 욱여넣어지고, 쏟아지고, 수거당하는 것……. 이 안에 우리가 숭고하게 여기는 생명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처음 닭장에 든 닭을 보았던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좋아하던 식당에서 식사한 뒤 기분 좋게 아빠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허리께까지 오는 케이지에 닭들이 욱여넣어져 있었다. 욱여넣어져 있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케이지 안엔 닭들이 말 그대로 테트리스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밟은 채 케이지의 바닥부터 끝까지.

그날은 처음으로 세상의 이면을 본 날이었다. 지나가는 길고양이, 발을 다친 새 따위에 연민을 느낀 적이야 많았으나 이건 결이 달랐다. 파괴였다. 무엇을 파괴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때의 나는, 이것은 최후의 무언가를 찢어발기는 행위임을 직감했다.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이후엔 그런 모습을 외면했다. 열악한 사육 환경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봤자 머리아플 뿐이었다. 그래서 기사를 무시했고, 지나가며 보이는 트럭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도로에 쏟아진 고기용 닭들의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기사를 클릭한 지금처럼.

처음 닭장의 닭을 본 날 나는 비건 선언을 했다. 치기어린 중학생의 반발은 부모님의 걱정과 은근한 식욕에 패배하여 얼마 안 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충격은 확실하게 머릿속에 남아서, 나는 나서서 고기를 찾아 먹지는 않게 됐다.

두 번째로 고기용 닭을 마주한 지금 역시 비슷한 결심을 한다. 적어도, 혼자 있을 때만큼은 닭을 먹지 말것. 입이 심심하단 이유로 시켜먹지 말고, 채소와 고기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을 때 고기를 선택하지 말것. (닭뿐만 아니라 고기 전반에 해당된다. 사랑이 넓어지듯 연민 역시 넓어지니까.)

나 하나 먹지 않는다고 닭이 구해지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이건 닭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내가 눈앞의 요리된 닭이 어떻게 사육되었는지를 모르는 척 음미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인간성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적어도 나의 세상에서 이것은 최후의 인간성이다. 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가끔은 치킨이 먹고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면 다시 이 글로 돌아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볼 것이다. “쏟아진” 닭은 도망치지 않고 도로에 가만히 놓여 있다. 내가 먹는 것은 그러한 닭이다.

그럼에도 입맛이 돈다면 먹으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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