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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무엇을반영하는가

악몽을 꿨다는 내게 애인은 그것이 물리 시험의 부담감의 무의식적 표출이라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물리 시험은 아니었으나, 내가 잠들기 전 생각한 것들이 그대로 꿈에 투영되어 나타났으니까.

꿈에서 나는 식인 사건의 피해자였다가, 시점이 전환되며 해당 사건의 제삼자가 되어 그 사건에 관해 얘기했다.

아래는 해당 악몽의 전문이다. 꿈에서 깨기가 무섭게 비몽사몽 간에 작성한 글이라 그리 매끄럽진 않다.

잠들기 전 나는 모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그릇된 욕망과,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 내가 느끼는 공포를 파헤치던 중이었고, 한편으론 이틀째 날 괴롭히는 모종의 사건을 수없이 복기하는 중이었다. 꿈은 나의 심리를 날것 그대로 전시했다. 나아가 모든 걸 극한으로 증폭해서 보여줬다. 꿈에서 외부인인 나는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추파를 받을 때마다 기쁨을 느꼈고, 결국엔 잡아먹혔다. 시점이 바뀐 뒤엔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비난하고 동정했다(언제나 스스로를 평가하며 다그치는 현실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똥, 똥은 또 왜 강조된 거지? 원초적인 역겨움을 위해?

무엇이 됐든 퍽 흥미로운 꿈이다. 지금껏 정신적으로 내몰릴 때마다 꿨던 악몽과도 결을 같이 한다. 억누르던 욕망의 극단적 발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역겹기 짝이 없는) 약간의 성적 함의. 내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만 모아 상영하기. 피해자성.

해당 꿈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 많지만 머리가 아프다.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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